석유가 쓸모 있게 된 역사를 알아보자
석유는 인류가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발굴해 낸 문명의 전유물이 아니다. 석유의 존재 자체는 고대 문명 시절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구의 패권을 쥐고 흔드는 ‘검은 황금’으로 격상하기까지는, 쓸모없는 오물 취급을 받던 암흑기와 한 석유 투기꾼의 집념, 그리고 고래의 멸종 위기라는 역사적 우연이 겹쳐진 과정이 있었다.
석유가 현대 문명의 핵심이 되기까지의 3대 변곡점을 알아보자.
1. 고대와 중세 - 땅에서 솟아나는 기분 나쁜 기름
인류가 석유를 처음 마주한 것은 땅속 깊은 곳이 아니라, 지각 변동으로 인해 지표면 바위틈이나 늪지대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유출유(Oil Seep)’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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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바닥에 고인 끈적한 아스팔트 찌꺼기를 모아 배의 틈새를 메우는 방수제나 미라를 만드는 방부제로 썼다. 고대 바빌론의 거대한 성벽을 쌓을 때도 이 천연 아스팔트가 시멘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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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과 중동: 기원전 4세기경 중국에서는 대나무 관을 땅에 박아 천연가스와 석유를 캐내어 소금물을 끓여 소금을 얻는 연료로 썼다는 기록이 있다. 중동에서는 이를 ‘나프타(Naphtha)‘라 부르며 불화살에 바르는 군사적 무기로 활용했다.
그러나 이때의 석유는 정제 기술이 없어 연기가 너무 많이 나고 고약한 냄새가 차오르는, 그저 ‘가끔 요긴하게 쓰이지만 다루기 힘든 불쾌한 기름’ 수준에 머물렀다.

2. 19세기 중반, 고래 멸종위기와 에드윈 드레이크의 도박
1800년대 중반까지 인류가 밤을 밝히는 최고의 조명 연료는 석유가 아니라 고래의 기름인 ‘경유(Whale Oil)’였다. 하지만 무분별한 포경으로 고래가 멸종 위기에 처하자 고래 기름값은 폭등했고, 전 세계는 밤을 밝힐 새로운 대체 연료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이 타이밍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현대 석유 산업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윈 드레이크(Edwin Drake)다. 1859년,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무모한 실험을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우물처럼 땅을 파서 기름을 퍼 올렸지만, 드레이크는 철제 파이프를 땅속 깊이 박아 넣고 증기기관 펌프로 지하 암반층을 직접 뚫는 ‘시추(Drilling)’ 기술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모두가 그를 미치광이라 부르며 비웃었지만, 지하 21m 지점에 도달했을 때 땅속에 갇혀 있던 석유가 파이프를 타고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지구의 내장을 열어 석유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역사적 신호탄이었다.

3. 나프타 정제와 가솔린 엔진, 쓰레기의 반전
드레이크가 석유를 대량으로 캐내자 과학자들은 이 기름을 끓여 고래 기름을 대체할 등유(램프용 기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의 분별 증류 기술로는 등유를 짜내고 나면 ‘휘발유(가솔린)’라는 부산물이 함께 튀어나왔다.
당시 휘발유는 쓸모가 전혀 없었다. 불이 너무 쉽게 붙어 폭발 위험이 컸기 때문에 정유업자들은 이를 강에 몰래 버리거나 드럼통째 불태워버리는 ‘가장 골칫거리 쓰레기’로 취급했다.
이 쓰레기를 인류 최고의 자원으로 바꾼 핵심 발명품이 바로 내연기관(Internal Combustion Engine)과 1908년 등장한 포드(Ford)의 ‘모델 T’ 자동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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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니콜라우스 오토와 고틀리프 다임러 등은 휘발유가 가진 극강의 폭발력(에너지 밀도)에 주목해 이를 동력으로 바꾸는 가솔린 엔진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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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가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며 전 세계 도로를 지배하자, 버려지던 쓰레기였던 휘발유는 단숨에 세상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연료로 전말이 뒤바뀌었다.

등유는 비행기의 제트 연료로, 경유는 거대한 선박과 트럭의 엔진으로 확장되었고, 짜고 남은 나프타로는 플라스틱을 만드는 화학 공학이 완성되면서 석유는 대체 불가능한 문명의 지배자가 되었다.
“석유의 역사는 발견의 역사가 아니라 ‘정제와 통제’의 역사다. 땅 위로 흘러나오던 기분 나쁜 오물은 인간이 ‘시추’라는 삽을 들고, ‘내연기관’이라는 통제 장치를 완성했을 때 비로소 인류의 가장 강력한 권력으로 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