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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에서 어떤 에너지들이 나오는지 알아보자

원유를 끓였을 때 휘발유, 등유, 경유 등이 각기 다른 온도에서 분리되는 이유는 ‘탄소 사슬의 길이’ 때문이다. 분별 증류탑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의 본질은 ‘탄소 사슬이 길어질수록 분자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는 점에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 분자의 세계에서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알아보자.

1. 분산력 (London Dispersion Force)#

탄소(CC)와 수소(HH)로만 이루어진 석유 성분(탄화수소)들은 전기적으로 아주 중성인 상태다. 플러스나 마이너스 전하를 띠지 않기 때문에 자석처럼 서로 강하게 끌어당기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자들을 아주 가까이 붙여놓으면, 전자가 주변을 도는 과정에서 찰나의 순간 한쪽으로 전자가 쏠리는 ‘순간적 불균형(편극 현상)’이 발생한다. 이 찰나의 불균형 때문에 옆에 있던 분자도 유도되어 미세하게 전기가 통하게 되며, 아주 약하게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생기는데 이를 물리학에서는 ‘분산력’ 혹은 ‘반데르발스 힘’이라고 부른다.

london-dispersion-force

2. 사슬 길이가 결정하는 접촉 면적#

이 분산력이라는 힘은 오직 분자와 분자가 ‘서로 맞닿는 표면적’에 비례해서 강해진다. 여기서 탄소 사슬의 길이가 차이를 만들어낸다.

  • 탄소 사슬이 짧은 경우 (예: 메탄, 프로판, 뷰탄 등 LPG 성분 / 탄소 1~4개): 분자의 크기가 아주 작고 둥글둥글하다. 분자끼리 서로 스쳐 지나갈 때 맞닿는 면적이 극도로 좁다. 비유하자면 매끄러운 탁구공 두 개를 맞붙여놓은 것과 같다. 분자 간의 인력이 너무나도 약하기 때문에, 이들은 상온(섭씨 20도) 정도의 미미한 에너지만 주어져도 결합을 툭 끊고 서로 멀어져 기체 상태로 날아가 버린다. 끓는점이 0도 이하로 매우 낮은 이유다.

  • 탄소 사슬이 중간인 경우 (예: 휘발유, 등유 성분 / 탄소 5~12개): 이제 분자가 제법 길쭉한 막대기 모양을 띠기 시작한다. 분자끼리 접촉하는 면적이 넓어지면서 분산력이 강해진다. 섭씨 30도에서 200도 사이의 강한 열을 가해 분자를 격렬하게 흔들어야만 비로소 결합이 끊어지며 기체로 변한다.

  • 탄소 사슬이 극도로 긴 경우 (예: 중유, 아스팔트 / 탄소 20개 이상): 분자가 거대한 실타래나 밧줄처럼 길쭉하다. 비유하자면 두 가닥의 긴 벨크로(찍찍이) 테이프를 붙여놓은 것과 같다. 닿는 면적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기 때문에, 분자끼리 서로를 붙잡는 인력이 무지막지하게 강하다. 웬만한 열(섭씨 350도 이상)을 가해서는 이 결합을 끊을 수 없다. 열을 받으면 기체가 되기 전에 자기들끼리 엉겨 붙어 끈적한 액체나 고체(아스팔트) 상태를 유지한다. line-range-surface

3. 분별 증류탑#

증류탑은 이 인력의 차이를 역으로 이용해 석유를 종류별로 걸러내는 거대한 화학적 체(Sieve)다.

  1. 증류탑 가장 아래쪽에 원유를 넣고 섭씨 400도로 끓여 모든 분자의 인력을 강제로 끊고 기체로 만든다.

  2. 기체가 된 탄화수소들이 증류탑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탑의 위로 갈수록 온도는 점점 낮아진다.

  3. 사슬이 긴 무거운 분자들(중유)은 온도가 조금만 낮아져도(약 300도) 자기들끼리의 강한 인력을 이기지 못하고 가장 먼저 다시 액체로 엉겨 붙어 아래로 떨어진다.

  4. 사슬이 중간인 분자들(등유, 휘발유)은 탑의 중간층(100~200도)까지 가벼운 기체 상태로 올라갔다가, 그곳의 온도에서 인력이 살아나며 액체로 응축되어 고인다.

  5. 사슬이 가장 짧은 가벼운 분자들(LPG)은 탑의 맨 꼭대기(30도 미만)의 차가운 환경에 도달할 때까지도 인력이 너무 약해 결합하지 못하고 끝까지 기체 상태로 탈출한다. coal-oil-sieve

“석유를 분리하는 힘은 인간이 가한 인위적인 가공이 아니다. 탄소 사슬이라는 물질의 형태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미시적인 인력의 차이, 그 자연의 법칙을 인간은 증류탑이라는 공간을 통해 길을 열어주었을 뿐이다.”

석유에서 분리되는 기름의 종류#

증류탑에 투입된 원유는 끓는점과 탄소 사슬 길이에 따라 자로 잰 듯이 명확하게 일곱 가지 군락으로 해체된다. 이들은 단 하나의 원유에서 태어났지만, 분자 구조의 미시적 차이로 인해 저마다 전혀 다른 물리적 성질과 쓰임새를 지닌다.

1. 석유가스 (LPG: Liquefied Petroleum Gas)#

  • 탄소 수: C1C4C_1 \sim C_4 / 끓는점: 섭씨 30도 미만

  • 특징 및 용도: 탄소 사슬이 가장 짧아 상온에서 기체 상태로 존재한다. 가볍기 때문에 증류탑 최상단에서 가장 먼저 분리된다. 보관과 수송을 위해 강한 압력을 가해 액체 상태로 유통하며, 우리가 흔히 아는 가정용 취사 가스(프로판)나 택시 등 차량용 연료(뷰탄)로 사용된다.

2. 휘발유 (Gasoline) / 나프타 (Naphtha)#

  • 탄소 수: C5C12C_5 \sim C_{12} / 끓는점: 섭씨 30도 ~ 140도

  • 특징 및 용도: 휘발성이 극도로 강해 낮은 온도에서도 쉽게 불이 붙는다. 일반적인 승용차의 가솔린 엔진 연료로 쓰인다.

  • 나프타의 가치: 휘발유와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한 구간에서 추출되는 ‘나프타(거친 휘발유)‘는 에너지라기보다 현대 화학 문명의 기초 원료다. 이를 다시 고온으로 쪼개어 플라스틱, 비닐, 합성섬유(옷감), 의약품 등을 만든다. 우리가 쓰는 일상용품의 90%는 여기서 나온다.

3. 등유 (Kerosene)#

  • 탄소 수: C10C15C_{10} \sim C_{15} / 끓는점: 섭씨 150도 ~ 250도

  • 특징 및 용도: 과거에는 가정에서 등불을 켜거나 석유난로를 돌리는 난방용 기름으로 가장 널리 쓰였다. 현대 산업에서 등유의 가장 핵심적인 용도는 항공유(제트 연료)다. 고온·고압의 극한 환경을 견뎌야 하는 비행기 제트 엔진은 불순물이 없고 안정적인 등유 성분을 특수 가공하여 사용한다.

4. 경유 (Diesel)#

  • 탄소 수: C15C20C_{15} \sim C_{20} / 끓는점: 섭씨 250도 ~ 350도

  • 특징 및 용도: 휘발유보다 탄소 사슬이 길어 묵직하고 쉽게 휘발되지 않는다. 불을 붙여도 쉽게 타지 않지만, 높은 압력으로 압축하면 스스로 폭발하는 성질이 있어 힘이 강력한 디젤 엔진에 쓰인다. 주로 대형 트럭, 버스, 건설 중장비, 기차, 그리고 중소형 선박의 핵심 동력원이다.

5. 중유 (Heavy Fuel Oil / B-C유)#

  • 탄소 수: C20C50C_{20} \sim C_{50} / 끓는점: 섭씨 350도 이상

  • 특징 및 용도: 점도가 매우 높아 끈적끈적하며 점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한 번 타오르면 거대한 열량을 내뿜기 때문에 오대양을 누비는 초거대 화물선(벙커C유)의 연료로 쓰이거나, 대규모 화력발전소 및 대형 공장의 보일러 연료로 투입된다.

6. 윤활유 (Lubricating Oil)#

  • 탄소 수: C20C50C_{20} \sim C_{50} (증류 후 남은 잔사유 가공)

  • 특징 및 용도: 기체로 날아가지 못하고 바닥에 남은 찌꺼기 기름 중 일부를 특수 정제한 것이다. 엔진이나 기계 내부의 금속 부품들이 부딪쳐 마모되지 않도록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자동차 엔진오일, 기계 윤활유의 원료가 된다. 타서 없어지는 에너지가 아니라 기계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수행한다.

7. 아스팔트 (Asphalt)#

  • 탄소 수: C50C_{50} 이상 / 끓는점: 분해 온도 이상 (끓지 않음)

  • 특징 및 용도: 원유에서 짜낼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뽑아내고 탑 가장 바닥에 남은 최후의 시커먼 고체성 찌꺼기다. 분자 간 인력이 너무나도 강력해 상온에서 돌처럼 굳는다. 인류는 이 쓸모없어 보이는 최후의 찌꺼기에 모래와 자갈을 섞어 매끄러운 도로를 포장하는 재료로 재활용하고 있다.

“원유는 버릴 것이 단 한 방울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자원이다. 인간은 그저 탄소 사슬의 길이에 따라 불의 온도를 조절했을 뿐인데, 석유는 가스통에서 시작해 자동차와 비행기를 거쳐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아스팔트 도로에 이르기까지 현대 문명의 모든 공간을 빈틈없이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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